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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자 J at 04/29 LG 안치용이 올해 터진 .. by brightbell at 12/11 그 잔혹사에 조인성 추.. by 와초우 at 07/10 제대로 짚으셨네요. 전.. by 비퓨 at 07/07 근데 박재홍선수 SK가서.. by 비퓨 at 07/07 지금 이글을 보니까 참 .. by 비퓨 at 07/07 유동훈 다음으로 믿을만.. by 켈리 at 07/07 요새 반짝이지만 김주형.. by 켈리 at 07/07 안녕하세요 ^^ 저는 .. by 장준영 at 07/01 두산 경기 보셨죠? 이젠 .. by 기아없이는못살아 at 06/21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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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 1차 지명은 오래간만에 1차 지명권이 2장으로 늘어난데다 해태와 KIA 역사를 통털어 최초로 단일리그 꼴찌를 기록한 05 시즌 탓에 2차 지명 1순위 지명권도 가지고 있어 결국 1차 지명 2명에 2차 전체 1순위까지 내리 3명의 선수를 지명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해 역시 호남권 자원의 풍년 현상은 예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교와 대학을 망라해 독보적인 활약을 보인 선수는 김진우를 낳았던 진흥 고등학교에서 그야말로 김진우를 빼다박은 정영일이었습니다. 이 선수는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고 말았지만 정영일에 대한 지명권 행사는 지금 돌이켜봐도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진출을 계산에 넣고 이 친구를 놓아주기에 정영일의 구위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했으니까요. 한기주의 중간계투 전환과 이 후의 맹활약이 딱 두어달만 앞섰더라면 돈에 관한한 타팀에 절대 뒤지지 않던 과감함을 보였던 KIA 입장에서 정영일에게 거액 투자하지 못할 이유라곤 전혀 없었습니다. 어쨌든 한기주의 초중반의 부진이 결국은 정영일의 계약금을 깎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제 2의 김진우는 미국행을 선택했습니다. 그 해 호남권의 지존이었던 정영일 제외하고도 자원은 풍부했습니다. 대학야구 투수랭킹 1,2위를 다투던 광주일고 출신 인하대 에이스 오준형과 군상상고를 거쳐 명문사학 고려대 에이스였던 이창욱이 모두 호남 출신 선수였고, 동성고 비운의 좌완 에이스 양현종, 광주일고 거포 김강 등이 있었습니다. 지명권 행사의 성패를 판단하기에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상태라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현재까지의 결과로 봐서는 이 해 역시 KIA 스카웃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준형은 파이어볼러들이 즐비한 KIA 마운드에서 그저그런(?) 구속으로 다소 평가절하 받고 있지만 대학야구 최고 투수 출신답게 빠르지 않은 구속으로도 정면승부를 꺼리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고졸 유망주들이 많은 마운드 구성상 변변히 기회를 얻지 못 하고 있지만 기회만 보장되면 한번 키워 볼 만한 자원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고교와 대학을 모두 거친 선수답게 적어도 고교 선수들과 달리 마운드에서 차분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럼 KIA 지명을 받지 못한 선수들을 살펴볼까요. 고려대 이창욱은 입단과 동시에 즉시 전력감으로 꼽혔지만 부상으로 인해 현재까지 활약이 미미한 상태입니다. 이 해 KIA의 1차지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엄청난 포텐셜을 잠재하고 있는 선수로 지금 한화에서 뛰고 있는 김강을 꼽고 싶습니다. 188cm에 89kg 광주일고 부동의 4번 타자로 1루를 맡았던 왼손 거포. 그의 신체조건이나 포지션, 타격 스타일은 고교 시절부터 제 2의 최희섭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습니다. 프로 첫해의 잠행을 거쳐 현재 2군 리그에서 홈런 4위, 타점 2위, 볼넷 1위를 기록하며 충분한 가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선수의 불행이라면 소년 장사 김태균이 1루를 지키고 있는데다 유난히 거포가 많은 한화에 지명된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KIA로 팀을 바꾼 몇년간의 1차지명을 되돌아 본 것은 지난해 정찬헌과 전태현의 저울질 속에 KIA는 동성고 정찬헌을 포기하고 군상상고 전태현을 지명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동성고 시절 정찬헌의 투구를 보셨던 분이라면 이 선수의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을겁니다. 시범경기와 시즌 초반의 빼어난 활약 이후 선발로 전환한 현재까지 성적은 좋지 않지만 분명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선수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 LG - FA 잔혹사 >
LG 구단의 FA 잔혹사는 아쉬운 선택을 연달아 반복하는 다소 답답한 모습이었습니다. FA 첫해 삼성의 과감한 투자로 해태의 이강철과 LG 김동수를 영입한데 자극받은 LG는 해태 부동의 4번 타자였던 홍현우를 22억에 영입 합니다. 01년 역대 FA 최고액이었던 홍현우의 가치는 당시로서도 22억의 배팅이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왜냐하면 큰 경기에 유난히 강한 명문구단 해태의 4번타자이면서 당시 나이가 만 29세에 불과 했고, 99년에는 30-30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귀하디 귀하다는 거포 내야수였습니다. 당연한 수순으로 몇몇 구단의 영입 전쟁이 불붙었고 그의 주가는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꺼림직한 부분은 홍현우가 고질적으로 무릎이 좋지 않았다는 점, 계약 직전 해에 역시 무릎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결장했고 결국 2할대 초반을 기록하는데 그쳤다는 점이었죠. 이 같은 점에도 불구하고 홍현우와 LG 구단은 계약서에 사인을 했지만 발표된 22억의 총액 가운데 12억이 계약금이었다는 점은 홍현우의 부진을 어느정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알려진대로 홍현우의 LG 4년간 통산 타율은 2할을 간신히 넘을 정도였습니다. 홍현우의 충격으로 이 후 3년가량 FA 영입에서 손을 뗀 LG는 해태의 후신인 KIA의 진필중을 비슷한 형태로 03년 겨울 영입하게 됩니다. 두산 시절 최강의 스토퍼였던 진필중이 영입되던 시점은 불행히도 고점에서 두산으로부터 KIA에 팔린 후 KIA 구단과 코칭스테프로부터 '속았다'는 한숨을 내쉬던 때였습니다. 그 진필중의 부활을 믿고 홍현우를 능가하는 4년 30억을 저지른 베팅이었는데 불행히도 결과는 진필중의 재기가 불가능하다는 확신만 남기고 말았습니다. 진필중의 영입이 이상훈의 SK 트레이드의 시발점이 되었던 부분은 단순히 금전적인 손실을 훨씬 뛰어넘어 팬들의 가슴에 큰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해 겨울 팀내 프렌차이즈 스타이자 팀의 간판이던 유지현은 기량 하락을 이유로 극심한 줄다리기 끝에 불과 1년 4억3천에 계약하고 말았습니다. 04년 겨울에는 1년전 유지현의 비극에 이어 94년 신인 3인방의 한 사람이자 고질적인 고관절 부상을 달고도 실로 믿기지 않을 타격 성적을 거두고 FA를 선언한 김재현을 허망하게 SK에게 빼앗기고 말았구요. 06년 겨울. 22억(홍현우), 30억(진필중)에 이은 다음 수순으로 40억 FA 박명환을 영입하게 됩니다. 부실한 선발진에 박명환이 한 해 동안 LG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올해들어 수술을 만류하던 구단의 권유를 뿌리치고 박명환은 결국 팀 전력에서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박명환은 다이나믹한 투구폼으로 인해 두산 시절부터 부상을 달고 살던 유리몸이었던 점, 그래서 활약이 좋은 해에는 리그 탑 클래스의 구위를 보이지만 거의 격년제(?)로 활약했던 점 등이 고액 FA에 꺼름칙하게 작용했으나 LG는 두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베팅으로 박명환을 영입했습니다. 결국 LG FA 잔혹사에서 그나마 가장 훌륭한 성적을 보여준 선수는 외부영입이 아닌 팀내에서 꾸준하고 성실하게 소리소문 없이 너무도 조용히 김용수의 팀내 최장기간 선수기록을 갈아치운 이종열이었습니다. 사족으로 FA 선수들은 고액 계약으로 많은 부를 챙겼을지 모르나, 이들의 부진은 분명 구단에 좋지않은 선례를 남겨 후배 선수들의 FA 계약에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대어급을 제외한 FA 시장은 찬바람이 꽁꽁 부는 것이 현실이죠. < 삼성 - 우승 잔혹사 > 삼성의 우승 잔혹사 역시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84년 저주기 게임의 저주' 라는 제목도 붙었고, 실상 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리그 챔피언에 올랐지만 한국시리즈가 없는 싱거운 우승으로 팬들의 인정을 받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8개구단 최고를 자랑하는 구단의 가공할 재정적 지원과 부담을 함께 짊어진채 우승을 위해 몸부림쳤던 삼성 프런트의 노력은 높이 사고 싶습니다. 삼성을 한국시리즈에서 무릎꿇린 김영덕, 김응룡 같은 적장을 영입하기도 했고, 김태한, 양준혁을 모두 입단 시키기 위해 양준혁을 상무로 보내고, 한국시리즈 준우승 감독을 경질하기도 하는등 감독 경질을 밥먹듯이 했으며, 중앙대 에이스 최창양의 미국진출 후 역수입, FA 제도 첫 해 이강철과 김동수의 영입 등 때로는 상도의를 어겼다는 말도 듣고, KBO 규약을 치밀하게 빗겨 나가는 현란한 스카우트 실력까지. 그렇게 눈물 겨운 노력에도 첫 한국 시리즈 우승은 2002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그간의 피눈물 나는 기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 OB에게 원년우승을 넘기고 말았던 82년 한국시리즈 패배. - 그렇게 원년 우승을 빼앗아갔던 적장 OB 김영덕 감독을 영입했지만, 지금까지 회자되는 야구계의 지우고 싶은 한페이지가 되버린 저주기 게임을 하고도 드라마 같은 우승의 주인공은 롯데가 되고 말았던 84년 한국시리즈. -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하고도 전기리그 2위, 후기리그 2위를 차지한 해태의 우승, 그리고 이후 해태의 시리즈 4연패의 출발점이 되고 말았던 86년 한국시리즈. - 전기리그 우승, 후기리그 우승, 팀타율 3할의 가공할 전력에도 프로야구 출범 최초로 한국시리즈 0-4 스코어를 기록하며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87년 한국시리즈. - 넘을 수 없는 산으로만 여겼던 해태를 플레이오프에서 제압하고 정녕 우승이 눈에 보일것만 같았지만 창단 첫해 우승이라는 감격을 선물하고 LG에게 무릎을 꿇었던 90년 한국시리즈. - 극심한 투고타저 시즌에도 타격랭킹 1,2,3위와 홈런왕을 보유한채 창과 방패의 대결로 불렸던 93년 한국시리즈 역시 패배. - 2위와 7게임차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지만 시즌 13게임차로 3위를 차지했던 두산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던 2001년 한국시리즈. 그간 흘렸던 삼성의 피눈물은 2002년 극적인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 후 선동열이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두번의 우승을 더했고 현재까지 전무후무한 11년 연속 포스트시즌 기록을 이어갈 정도의 명실상부한 리그의 강호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2005년 1차지명 후보로 광주일고 투수 곽정철과 동성고 유격수 이원석을 놓고 간만에 큰 고민없이 곽정철을 지명했던 기아는 2006년 또다시 지역 대어급 고교선수들이 쏟아져 나오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실상 기아가 지명하고자 했던 선수는 진작에 한기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2학년때부터 초고교급 피칭을 선보였기 때문에 구단과 팬들은 이 선수의 졸업만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죠. 하지만 문제는 한기주를 지명하면서 2차지명으로 빠져나올 연고 선수들이었습니다. 기아 구단에게는 지명권이 1장 뿐인 것이 통탄할 일이었죠. 그 첫번째 주인공은 현재 롯데에서 뛰고 있는 나승현입니다. 동성고 한기주와 광주일고 나승현. "하늘은 이미 주유를 낳았거늘 왜 또 공명을 낳았단 말인가" 라는 삼국지의 한구절이 떠오르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기주가 불같은 광속구의 정통파 투수라면 나승현은 체구부터가 투수보다는 내야수에 가까웠고 쓰리쿼터 형태의 투수였습니다. 하지만 '싸움닭'이라는 별명처럼 대단한 승부근성과 고교생답지 않은 마운드에서의 냉정함, 쓰리쿼터 형태로 145km 를 넘나들 정도로 구위 또한 빼어났습니다. 이 선수의 투구 스타일이나 투구폼, 그리고 별명과 체구까지 호남이 낳은 불세출의 투수 조계현을 그대로 빼닮은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나승현이 05년 지명 대상자였다면 아무 고민 없이 곽정철을 포기하고 나승현을 찍었을겁니다. 또 하나의 아까운 재목은 현대에 지명된 광주일고 포수 강정호. 아시다시피 강정호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잘 알려져 있지만 주 포지션은 포수였고 청소년 대표도 포수로 뽑혀 나갔었습니다. 하지만 내야수로서의 자질도 뛰어나 유격수를 비롯한 거의 모든 포지션을 담당할 수 있으면서 방망이 또한 고교야구 거포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대형 포수이자 대형 유격수이면서 차세대 거포인셈이죠.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는건 아마야구임을 감안하더라도 야구 센스가 상당히 뛰어난 선수임엔 분명했습니다. 저들 뿐만 아니라 군상상고 좌완투수 차우찬과 외야수 황선일, 광주일고 내야수 김성현. 아무리 생각해도 남주기엔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쉬운 선수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운명은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 프로 3년차에 불과한 선수들입니다만, 이번에도 여전히 기아 스카우터의 안목은 옳았습니다. 06년 입단한 호남출신 고교야구 스타들 가운데 단연 가장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선수는 한기주 입니다. 입단 초반의 부진을 딛고 중간, 마무리로 전환한 뒤로 고교시절보다 더욱 위력적인 공을 던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장 크게 기대를 벗어나 버린 선수가 롯데의 나승현이네요. 입단 초반 별반 활약을 하지 못하다 유독 연고선수에 약한 KIA를 만나 연이틀 세이브에 성공하며 한때 부실한 롯데 뒷문의 희망이 되었지만 19살 신인에게 좀 버거운 짐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그 해 16세이브를 거두며 가능성을 보였지만 이후 지금까지 상당히 아쉬운 모습이네요. 고교때 비해 구속도 구위도 훨씬 위력을 배가한 한기주에 비해 나승현의 구속은 고교때와 별반 다름이 없어 보입니다. 정교한 제구는 아직 감은 잃지 않은듯 하지만 공이 가벼워 통타 당하다보니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무색해진 선수가 되버렸네요. 하지만 아직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선수로 봅니다. 현대에 지명된 강정호. 지금까지는 한기주를 따라올 가장 유력한 후보입니다. 신인왕 사관학교라는 현대에서 입단 첫해부터 김재박 감독의 신임을 단단히 얻었고, 박진만의 이적 이후 여러 선수를 유격수로 실험하고 있던터라 유격수로 키워볼 요량이었습니다만 초반 부진을 거듭한 끝에 2군으로 강등된 후 1군에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허나 자질이 빼어났던 선수인만큼 2군 강타자로 활약했구요, 올해 다시 한번 이광환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아래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려운 팀 사정상 포수, 3루수, 유격수 등 여러 포지션에서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타율은 아직 낮지만 키우기에 따라 거포 내야수로서의 성장이 기대됩니다.
1년전 광주일고의 쌍두마차 고우석, 김대우 두 투수를 두고 고민했던 KIA 스카웃팀이 이번에는 대형 투수와 대형 내야수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조용준/강철민 이후 효천 고등학교가 오랫만에 낳은 대형투수 김수화와 제2의 김동주라 일컬어지던 동성고 3루수 김주형이었습니다.
김수화는 고교선수로 최고 147km의 광속구를 선보였으며 광주 출신 대형투수들이 그러했듯 빅리그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모은 대형투수였으나 좋은 신장에 비해 가벼운 체중으로 인해 공이 가볍다는 점, 스카웃 여건이 좋지 않은 팀 사정상 무리한 투구를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단점으로 작용했습니다. 김주형은 대구고 박석민과 함께 그 해 고교야구를 대표하는 대형타자였습니다. 포지션이 3루였던 탓에 제 2의 김동주라 불렸지만 고교시절 유격수를 봤던 김동주에 비해 3루를 맡은 김주형의 순발력이나 수비 솜씨는 일단 미지수인 상태였습니다. 또한 전국대회에 나무배트가 도입되기 이전이라 고교시절 방망이 실력은 프로에 들어 다시 한번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물론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던 몇몇 고교선수들은 따로 나무배트로 훈련을 병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처럼 투타의 선택의 기로에서 대부분의 스카우터들은 투수를 선택하곤 했습니다. 이전 20여년간의 결과를 보더라도 투수를 선택하는 것이 높은 성공률을 보였음이 증명된 바 있으며, 세간의 평 또한 프로와 아마간의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타격보다 대형 투수 김수화의 성공 가능성을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허나 해태시절 호쾌한 타격을 자랑했던 KIA 입장에서 동성고 김주형은 97, 98년 광주일고 졸업반이던 최희섭, 정성훈 이후 대형 타자 자원의 부재 끝에 실로 수년만에 나타난 호남권 거포라는 점이었습니다. 이에 덧붙여 강타자 출신의 김성한이 감독을 맡고 있던 시절로, 거포 부재를 부르짖고 다녔던 김성한의 존재 또한 1차지명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KIA는 김수화를 포기하고 동성고 김주형을 지명하게 되며, 롯데는 1년전 광주일고 김대우를 지명한데 이어 이번에도 KIA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2차지명으로 흘러나온 김수화를 지명하게 됩니다. 세간의 평가대로 3억의 계약금을 받은 김주형에 비해 김수화는 2차지명으로 밀렸음에도 5억이 넘는 계약금을 받고 롯데에 입단합니다. 하지만 두 선수의 활약은 지난해 고우석/김대우 콤비에 못지 않을만큼 아마시절의 명성을 무색하게 하였습니다. 김주형은 이현곤, 손지환, 홍세완, 김종국 등 어마어마한 명성을 가진 선배들을 넘지 못하고 내야수라는 원죄로 인해 포지션을 찾지 못해 방황을 거듭했으며 연습경기와 2군 경기에서는 강타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지만 1군에만 올라오면 숨을 죽인 방망이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김수화는 고교시절 무리한 투구로 인해 2년의 잠행 끝에 06년 전격적으로 1군 선발로 중용되어 한동안 붙박이 선발로 출장했으나 1승9패의 처참한 성적으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두 선수는 아마시절 명성만큼이나 분명 좋은 자질을 가진 선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김주형은 3년차인 06년부터 서서히 1군에서 어필하는 타격을 보여주었으며 작년엔 연타석 홈런을 뿜어내기도 했으며 여전이 많은 KIA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 거포입니다. 외야 전향으로 인해 기회조차 변변히 얻지 못하고 단점으로만 지적받던 내야 수비의 부담을 떨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수화는 우수한 신장은 말할 것도 없고 06년 1군 생활에서 비록 결과는 나빴지만 좋은 투구폼과 함께 수비 동작 등 투수로서의 탄탄한 기본기를 가진 선수임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현재 상무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구요. 고우석/김대우와 마찬가지로 역시 김주형/김수화의 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아직 20대 중반에 불과한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즈음해서 다시 한번 KIA의 1차지명을 되돌아 보면 무려 5억의 계약금을 받은 김수화가 분명 더 많은 점수를 받았지만 결과는 비등한 상태입니다. 오히려 타팀에서는 애초 기대를 포기했을 김주형이 KIA에서는 수년간의 장거리포 공백으로 인해 4년이 넘게 변함없는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스카웃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연고지역 선수를 무제한 지명하던 80년대 이후 1차지명이란 이름으로 연고지역 선수 지명 숫자가 점차 제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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